예전에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가 대히트를 치며
구구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방에서도 자주 불려지며 인기를 얻었던 그 노래.
이무송의 <사랑이 뭔지>가 한반도를 강타하며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던 때가 93년이었다고 기억된다.
길거리마다 불법복제카세트테잎을 파는 리어카마다 레코드점마다
그야말로 전국토를 뒤덮다시피하며 지겹게도 틀어댔던 이무송의 노래.
"아싸 아싸"하는 특유의 후렴구가 특히나 인상적이었으며 아무튼 엄청난
인기몰이에 성공해서 이무송을 93년 최고의 인기가수로 등극시켜줬던 노래였다.
지금은 이무송의 아내로서 행복하게 살고있는 노사연의 "만남"또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사연 최대의 히트곡인데 그 때 이 노래로 연말가요시상식에서
대상도 안겨주고 그 해를 노사연의 해로 만들어줬던 최고의 인기곡이었다.
주현미는 80년대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트로트가수로서 트롯계의 여왕이라
할만한 가수인데 가히 그 바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가수였다.
<쌍쌍파티>,<잠깐만>,<짝사랑>,<또만났네>,<신사동 그 사람>,<비내리는 영동교>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90년대 들어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었는데
전해지는 야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최초로 음반판매 백만장을 넘긴 앨범은
주현미의 <쌍쌍파티>라는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밀리언셀러앨범시대를 열었던 가수들로서 흔히
서태지와 신승훈,김건모가 대중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주현미가 이미 80년대중반에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데 다만 당시의 음반및 대중음악계를 둘러싼 여건과 환경이 정확한
음반판매량을 계측할수가 없던 시절이라서 (뭐 지금도 별반 다를건 없지만)
비공식적인 기록으로 대강 추측할뿐이라서 그렇지 만약 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정확하고 공신력있는 공식음반판매량집계가 이루어졌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앨범은 당연히 주현미의 <쌍쌍파티>가 인정받을거라는것이
이 바닥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나야 뭐 그 때 국민학생이라 잘 모르겠는데 <쌍쌍파티>가 당시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초히트를 날렸었다고 한다.
음반도 불티나게 팔렸었다는데...
우리 정수라 누님의 <아 대한민국>도 빼놓을 수 없는 80년대의 히트곡이다.
그때가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가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원하는것은 무엇이든 할수가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라는 믿음에 한치의 의심도 없던 그 시절.
그저 어린 마음에 이 노래를 들으며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에서 살고있구나 라는 생각을 맘속깊이 심어주며
애국심과 충성심을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오르게 만들었던 이 무시무시한 캠페인세뇌송.
이 노래가 불과 10여년이 지나서는 전두환정권의 국민기만술의 수단으로 쓰였던
노래라고 비난받고 조롱받게 될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했었겠는가.
정수라의 또다른 히트곡이라면 <환희>와 공포의 외인구단 영화주제가로
쓰였던 <난 너에게>를 들 수 있겠다.
"난 니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지금 다시 들어도 온 몸에 전율이 쫙 끼쳐오르게 만드는 이 애절하고
절절한 선율이 새삼 옛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가히 우리나라 만화역사상에 한획을 그으며 대본소만화계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던 기념비적인 작품인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원작으로
이장호 감독이 동명제목으로 만들었던 이 영화는 최재성,안성기,맹상훈,권용운등이
출연했는데 - 엄지역의 배우는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누구였더라? -
다른 배역이야 그렇다 쳐도 90년대 이후로 어딘가 좀 꺼벙하고 어리숙하고
옆집 구멍가게 아저씨 내지는 동네만화방 아저씨같은 이미지로 고정된
맹상훈이 냉철하고 이지적인 마동탁역을 맡았다는게 상당히 의외스러웠던 작품이었다.
맹상훈도 마동탁역을 맡아서 연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단 말인가.
아무튼 영화의 히트와 함께 주제가인 정수라의 노래도 인기폭발이었다.
내가 아는 한국영화중에서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이게 처음이다.
물론 그 전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뭐 내가 모르는 얘기고.
박봉성의 <신의 아들>이 최민수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것도
전에 <공포의 외인구단>이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서 성공한 영화라는
전례를 남겨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80년대 가수왕을 휩쓸다시피 했던 조용필의 연승행진을
저지한 유일한 가수로 너무나도 유명한 이용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가수 되겠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이용의 최고의 히트곡이자 대표곡인 <잊혀진 계절>은
아직도 10월의 마지막날만 되면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노래이며 10월에 라디오를 듣다보면 적어도 한 번 씩은 듣게되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근데 그 때 이용이 가수왕 안 탔으면 조용필은 도대체 몇년 연속 가수왕의
기록을 세우게 되는거지?
말이 나온 김에 조용필 형님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을 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우리 가요계의 영원한 슈퍼스타이자 80년대의 서태지이며
오빠부대의 창설자이고 아무튼 그 밖에도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들은
무수히 많다.
대단한 가수임에는 틀임없는 사람이다.
그만큼 히트곡도 무수히 많아서 일일이 다 예를 들지는 못하겠고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우리 전영록 형님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인기가수이다.
<내사랑울보><저녁놀><불티><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등 수많은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겼으며
동안인 덕분에 만년소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다.
게다가 쿵후유단자로 무술가로서도 유명했는데 덕분에
<돌아이>시리즈등 일련의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전영록과 진유영의 멋진 콤비플레이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둘이 같이 출연하는 모습을 보면 참 잘 어울리는게
궁합이 잘 맞는 태그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이는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 인기로 인해 아마 5편까지인가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미국에 록키시리즈가 있다면 한국엔 돌아이 시리즈가 있었다.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그 노래도 참 맘에 드는 좋은 노래였다.
나 중학교 다닐때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김종찬.
심장에 황산을 들어붓듯이 사람 가슴을 애절하게 녹여내는
처절한 아픔이 느껴지는 노래 <사랑이 저만치가네>로
데뷔해서 <당신도 울고있네요><토요일은 밤이 좋아>등의
후속곡으로 인기를 얻으며 활발하게 활동했었다.
그 때 우리반애중에 노래를 잘하는 애가 하나 있었는데
<사랑이 저만치 가네>를 김종찬 찜쪄먹을 정도로 똑같이 불러서
반애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친구였다.
지금 어디서 뭐하구 사나.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이 아마도 10여년전에 인기를
끌었었다고 생각된다.
무척이나 느낌이 좋은 잔잔하고 가볍고 감미로우면서도
애잔한 슬픔이 배어있는 노래로서 들으면 기분이 차분해지고
마음을 ? 가라앉혀주는 노래이다.
그 특유의 창법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어린이 드라마인 <호랑이 선생님>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황치훈이 어느새 어른이 되서 가수활동을 한다며
발표한 노래인 <추억속의 그대>도 참 느낌이 좋은 노래였다.
당시 인기도 꽤 있었고 노래방에서도 잘 나가는 노래였다.
황치훈 나랑 얼추 나이대가 비슷할텐데...
지금도 가끔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옛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의 유진만큼 10년전에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추종하고
숭배하고 동경해마지 않았던 나의 히로인 강수지도 빼놓을수 없다.
<보라빛향기>로 데뷔해 <시간속의 향기>등의 노래로 인기를 끌며
당시 최진실/하수빈/신윤정과 함께 중고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책받침/책갈피/브로마이드의 모델로 가장 잘 나가며 각광받았던
초특급하이틴아이돌스타였다.
너무나 가냘픈 몸매에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미국에서 백달러만 들고
입국해 가수활동을 시작했다는 전설적인 데뷔일화를 자랑하는 그녀는
그 악바리근성덕분에 "강깡"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데뷔후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때 송승환이 강수지의 몸을 대가로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그녀를 키워줬다는 흉흉한 악성루머에
시달렸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튼 얼굴 예쁜 여자연예인들은
몸팔아 인기얻었다는 추문들이 끊이질 않고 달라붙는건 매한가지인가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대한민국의 30대여성중에 가장 예쁜 여자를
꼽는다면 서정희를 제외한 상태에서 강수지를 꼽겠다.
어느 의사랑 사귄다고 하던데 결혼은 언제 할런지
- 10대시절의 나의 우상 하나가 이렇게 또 떨어져 나가는구나.
하수빈은 <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로 데뷔해서
<노노노노>라는 댄스곡을 후속곡으로 밀면서 활동했었는데
솔직히 강수지의 아류이자 짝퉁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사람들에게 별다른 호감과 관심을 끌지 못했던 가수였다.
게다가 여장남자라는 소문까지 돌았었는데 정말 살면서 그렇게
해괴한 루머는 처음이었다.
물론 그 전에 임청하가 동성연애자라는 루머도 꽤나 황당하긴 했었지만.
아무튼 내가 살면서 여장남자라는 루머를 들어본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돌게 됐는지 - 참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뭐 지금 같으면 그런 소문이 돌아도 그냥 그러려니/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겠지만 당시상황에서 어린 나에게는
정말 이런 소문이 돌아다닌다는 자체가 충격과 경악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맘에 안드는 애였다.
원미연도 당시 꽤나 인기를 끌던 가수였는데
기억나는 노래라고는 <이별여행>뿐이다.
원준희는 당시 정말 잘나가는 인기가수였는데
그 아름다운 미모와 눈부신 자태덕분에 특히나 청소년남자애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던 여가수였다.
<사랑은 유리같은것>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이 한곡의
대표곡/히트곡만을 남기고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당시에는 그런일이 없었는데 원준희가 가요계에서 사라지고 난 후
한 때 항간에서는 원준희와 원미연을 헷갈려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당시 나도 둘이 상당히 헷갈렸었다.
80년대 최고의 인기여가수였던 이지연.
너무나 청초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데뷔곡 <그 이유가 내게는 아픔이었네>가 빅히트를 치고 난후
<러브퍼나잇><바람아 멈추어다오>등의 후속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명실공히 최고의 아이돌스타로서 가히 80년대 후반 김완선과 함께
가요계의 2대 디바로서 청소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하던
그녀는 갑자기 터진 사랑의 도피행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뒤
소식이 뜸해졌고 그걸로 그렇게 그 폭발적인 인기와 인지도가
한순간의 불꽃처럼 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나는 당시 이지연이 왜,어떻게,무엇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사건의 전말과 경과를 알지 못한다.
그 청순가련섹시쌔끈하기 이를데 없는 자태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던 사람이 나만은 아닐진대.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노래이다.
노래방에 처음 가던 시절에 꼭 빼놓지 않고 한 번씩은 부르게
되었던 노래.
이 노래 정말 좋지 않은가?
제3세대라는 댄스가수팀이 있었다.
얘들 노래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당시 꽤나
유행하고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있었다.
" 그대 눈길로 나는 행복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 중략 -
나 그대 사랑해요. 이 세상 전부보다 더
나 그대 사랑해요. 모든것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
어리다고 말 (어리다고 말)
하지 말아요 (하지 말아요)
나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구요."
이 가사 보고 제목 생각나시면 좀 알려주시라.
내가 무척 좋아했던 당시 가수중에 서울패밀리 라는
팀이 있었다.
위일청 아저씨랑 여자분 한명으로 이루어진 듀엣팀이었는데
그들의 대표곡이자 히트곡인 <이제는>이라는 노래가 또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이 노래와 듀엣이 너무 맘에 들어서 많은 활동을 기대했었는데
이 팀은 결국 이 한곡의 히트곡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을
보여주지 않고 해체한뒤 위일청 아저씨가 간혹 방송에 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턴가 그냥 잊혀져 버렸다.
그렇다.
당시만해도 엽기라는 단어가 선데이서울류의 3류황색저널에서나
잔인하고 잔혹한 범죄사건을 보도할때 흔히 사용하는 수식어였기에
그렇지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엽기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었다면
아마 십중팔구 이남이에게도 엽기가수라는 타이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룹 <사랑과 평화>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이남이.
<울고싶어라> - 이남이 인생 최대의 히트곡이자 대표곡인 이 노래가
생각나시는가.
가뜩이나 어벙한 외모에 벙거지모자 눌러쓰고 동그란 안경이 얹혀진
코밑에 난 콧수염으로 포인트를 주었던 이남이.
그야말로 너무나도 노래의 주제와 감정을 200%이상 살려내는
그 특유의 절규하는듯한 울부짖는듯한 무대매너와 제스쳐.
그야말로 노래자체에 완전히 몰입해서 무아지경/검신합일의 경지에
이른 감정이입을 보여주는 그 엄청난 쇼맨쉽과 연출력.
듣는이마저 정말로 울고싶게 만들어버리는 그 놀라운 흡입력과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이남이야말로 진정한 엽기가수의 시초이리라.
<이별 아닌 이별>이 히트하면서 일약 최고의 인기가수로 떠오른
이범학은 그러나 노래자체보다도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의 희생양으로서 더욱 유명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 있다.
당시 잘나가는 대학생출연퀴즈프로그램인 <퀴즈아카데미>에서
문제 출제자로 출연해 "새발의 피는 과연 무슨 뜻일까요?"라는
불후의 멘트로 전국민에게 폭소와 함께 잊을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겨준 이범학은 이 프로그램덕분에 가수로서보다도
오히려 가장 대표적인 몰래카메라의 희생자로서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숙히 각인되어 버렸다.
작금의 가요계에 컨츄리꼬꼬가 있다면
80년대에는 도시 아이들이 있었다.
물론 당시 도시아이들이 지금이 컨츄리꼬꼬처럼
특유의 말발과 유머감각으로 가요프로보다 오히려 각종 쇼오락코미디프로그램에서
더욱 각광받으며 활동하던 건 아니었지만
코믹발랄한 활동모습이나 분위기,전체적인 컨셉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껴진다.
<텔레파시><달빛창가에서>등의 노래를 히트시키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었는데 아무튼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유쾌한 듀엣이었다.
일명 노찾사로 흔히 지칭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는 노동운동현장에서나 쓰일법한 민중가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노래였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이었던
이 노래는 아마도 민중가요성격을 가진 노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오버그라운드에서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아닌가한다.
지금에서야 10대 고교생가수들이 대중가요계의 주축을
이룰 정도로 많아졌지만 10여년전만 해도 고교생가수는
그 존재자체만으로 화제가 될 정도로 드물었었다.
당시 대표적인 10대가수였던 김승진은 <스잔><유리창에 그린 안녕>등의
노래를 히트시키며 10대여학생들이 열렬한 사랑을 받았었다.
또한 내가 가장 좋아했으며 우리 또래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여고생가수 박준희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었는데
데뷔곡 <눈감아봐도>의 성공에 힘입어 2집을 발표했지만
타이틀곡 <앨리스>가 1집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의 반응밖에
이끌어내지 못하자 자취를 감췄다가 96년이던가 김창환사단의
<콜라>라는 댄스그룹의 보컬로 다시 가요계에 복귀해서
<모기야><우울한 우연>등의 노래로 어느정도 인기를 끌며
활동했지만 결국 단명한 그룹이 되고 말았다.
박준희도 참 예뻤었는데.
양수경누님은 <사랑은 차가운 유혹>
<사랑은 창밖의 빗물같아요><바라볼 수 없는 그대>등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연속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의 인기여가수로
활동을 했었다.
지금은 뭐하고 사나 모르겠다.
주병선의 <칠갑산> - 이 노래 정말 죽여주는 노래다.
한민족의 애절한 한을 이처럼 잘 표현하고 형상화한
대중가요는 일찌기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리라.
정말 듣는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듯한 애달픈 슬픔과
고뇌와 애를 끊는 단장의 느낌을 뼛속까지 스며들게 해주는
이 노래를 들으며 가슴속의 한이 우러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한민족이 아니리라.
참고로 몇년전 칠갑산에 놀러갔을때 보니까 산전체에서
하루종일 오로지 이 노래만 틀어주고 있었다.
지금도 칠갑산에 가면 칠갑산 노래만 틀어주고 있을런지.
강산에는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록커였는데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 <라구요>와
방황하던 청춘군상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위로를
해주던 <넌 할 수 있어>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인기가수로
급부상했다.
당시 예비역선배들이 가장 좋아했고 노래방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노래중의 하나였다.
다섯손가락의 <풍선>은 언제 들어도 분위기를 밝게 띄워주는
기분좋은 노래이다.
명품은 세월이 지나도 영원하다 했던가.
이 노래야말로 그야말로 시간을 초월해 영원히 사랑받을만한
즐겁고 밝은 노래로서 상당히 긴 후렴구 덕분에 자칫 지루해질수
있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흠잡을곳 없는 좋은 노래였다.
이치현과 벗님들의 <집시여인>이 또한 대한민국가요계를 강타해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던 때가 있었다.
전국에 집시여인돌풍을 몰고오며 가요톱텐베스트에 빛나던 불후의 명곡.
당시 나의 애창곡이자 18번이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최성수는 <풀잎사랑><동행><기쁜우리사랑은>등의 노래를 히트시키며
역시나 최고의 인기가수로 사랑을 받았던 가수인데
당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서 가장 자주 들을수 있었고
많이 불렀던 노래로서 최성수특유의 그 아침햇살에 빛나는
영롱한 이슬처럼 낭랑한(?) 목소리와 친근하고 따라부르기쉬운
멜로디가 인기의 비결이었던것같다.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 - 이 노래 매년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이다.
올해 가을에도 분명히 어딘가에서 이 노래를 들을수 있겠지.
그야말로 가을의 정취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래로서
내 생각에는 이 노래를 대한민국공식지정가을테마송으로
추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걱턱이 인상적이었던 섹시가수 이재영의 <유혹>은
그녀를 일약 최고의 인기스타로 발돋움시켜준 라틴댄스곡인데
백지영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가수되겠다.
근데 춤이나 노래는 섹시한 분위기가 물씬 넘쳐나는데
불행히도 노래를 부르는 가수 당사자는 섹시함과는 너무
동떨어진 인물이라 상당히 아쉬웠었다는.
주걱턱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전에 그런 농담이 있었다.
옆에서 보면 신애라 - 앞에서 보면 이순자.
80년대같으면 경을 칠 소리였겠지만 세상이 좋아져서
이런 농담도 거리낌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웃었던 시절도 있었다.
블랙홀의 <깊은 밤의 서정곡>과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는
그야말로 설명이 필요없는 당대최고의 인기가요였다.
나를 비롯한 엔간한 남자애들이 그야말로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고
열광했던 그 노래들.
스트레스해소용으로 만빵이요 왕빵이요 왓다라고 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당시 인기절정을 달렸던 락음악이라면 또한 전인권과 들국화의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행진><그것만이 내 세상><사랑한후에>같은 노래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며 노래방에서 자주 불려졌었다.
90년대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특유의 인텔리틱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사회비판풍자성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공일오비는 서울대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던 당대최고의 인기그룹이었다.
사회현실을 비판한 가사들도 그렇고 객원가수를 활용한다는 점도 그렇고
당시 대중들에게는 상당히 특이하고 개성강하고 뭔가 있어보이는
잘난그룹이라는 이미지빨이 상당히 먹혀 들어가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었는데 신해철이 탈퇴한 무한궤도의 기존멤버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든 그룹이라는 이유때문에 기존무한궤도의 팬층을 거의 그대로
흡수해서 출발부터 비교적 안정된 바탕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는 그룹이다.
공일오비는 그 후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공전절후의 초절정아이돌스타가
나오기전까지 가히 대중가요계에서 적수가 없는 독보적인 그룹으로서
활동을 해왔는데 서태지의 등장이후 급변한 가요계풍토속에서
과거에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유니크한 장점과 그들이 누려왔던
기득권이 흔들리게되고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다가 해체하게된다.
솔로로 독립한 신해철은 청소년팬들의 변함없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활동하다가 넥스트를 결성해 새롭게 변신을 시도하게되고
넥스트 해체후 솔로로 활동하다가 얼마전에는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그룹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지금근황은 잘 모르겠다.
이덕진이라는 가수가 <내가 아는 한가지>라는 데뷔곡으로
등장해 소녀팬들의 인기를 끌면서 신성우와 함께 가요계의
양대테리우스로 불리며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신성우는 <내일을 향해><서시>등의 히트곡으로 인기를
끌면서 꾸준히 가요계의 테리우스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활동을 했고 한때 지니라는 그룹활동을 하기도 했다.
장현철은 당시 최민수/김혜선 주연의 인기드라마였던
<걸어서 하늘까지>의 주제가를 불러서 큰 인기를 끌며
가요계에 등장했었고 이주엽이 부른 <우리들의 천국>주제가인
<아껴둔 사랑을 위해>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주제가였다.
당시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를때면 가장 많이 나왔던 노래가
<걸어서 하늘까지>와 <아껴둔 사랑을 위해>였을만큼
이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었고 그만큼 그 주제가들도
청소년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었다.
이병현이 오혜성역으로 오현경이 상대역으로 출연해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폴리스>는 이현세원작의 동명만화
<폴리스>를 드라마화한 작품인데 이 작품에서 주제가인
<내가 선택한 길>을 불렀던 손성훈도 드라마의 인기덕분에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 드라마에서 김호진이 배도협역으로 엄정화가 엄지역으로
출연했었는데 다른 배역들도 전부 적절한 캐스팅이었지만
특히 엄지역에는 엄정화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캐스팅이었다.
둘이 진짜 상당히 비슷하게 많이 닮지 않았는가?
이정현이라는 재미교포출신가수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던 시절도 있었다.
작금의 손가락에 마이크 달고 다니며 이집트풍의상을 입고
"여러분 사랑해요"를 외치는 그 여자가수 이정현과는 동명이인일뿐
별관계는 없다.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상당히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노래인데
이게 뭐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노래도 아니고
겉으로 확 드러나게 폭발적이고 가시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도 아니지만
정말 물밑으로 꾸준하게 은근히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희대의 초히트곡이었다.
이 노래가 정말 한 3-4년은 꾸준히 인기를 끌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당시 예비역형들의 최고의 인기곡이자 술자리최고인기곡으로서
참 많이도 불려졌던 애창곡이었다.
중년층에게나 인기를 끌법한 이 노래가 어떻게 대학생에게까지
그렇게 폭발적이고 꾸준한 인기를 끌며 장수하는 히트곡이 됐는지
그 폭넓은 팬층과 에너자이저를 능가하는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못하는 바이다.
정경화의 <나에게로의 초대>도 임주리의 노래와 비슷한 케이스되겠다.
이 노래역시 정말 은근하게 꾸준하게 물밑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인기를 누리고있는 장수히트곡인데 정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좋아할만한 사람은 다 좋아하는 의외의 인기애창곡이라고 할 수 있다.
10대소녀부터 50대아저씨까지 두터운 팬층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이런 노래들은 과연 명곡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샘플들인것인가.
WRITTEN BY PAROLANTO
2001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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